평생 식지 않을 온기
꿈사다리학교 24기 고흥 포두중학교 멘토 나세현
중학교 졸업을 한지 10년이 지나고 오랜만에 가본 학교의 강당은 놀랍도록 내 기억과 똑같았고,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은 깜짝 놀랄 만큼 내 예상과 달랐다. 생각보다 크다는 느낌과 동시에 내가 진짜 중학교에 왔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그 때부터 긴장이 되면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나의 멘티들이 남자 5명으로 정해졌을 때 부담이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중학교 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특히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학교 때 배구 수행평가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 해 본 배구는 손목이 아팠지만 좋은 점수를 맞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마침내 최고점수를 받게 됐지만 뿌듯함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만 들었었다. 그 때의 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체육을 즐기지 못했고 결국 체육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우연히 아이들과 함께 한 배구는 여전히 아팠고 여전히 못해서 하다가 도망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은 왜 이렇게 바뀌는 게 힘든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에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멘티들의 멘토였고 그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과 특성상 발표가 많이 없지만 이마저도 피할 정도로 발표를 싫어하던 내가 아이들 앞에 나서서 진행을 하게 됐다. 솔직히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괜찮았다. 내가 못하든 잘하든 그건 여기에서 별로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인정할 정도로 노래를 정말 못 부르지만 즉흥적으로 노래를 시켜도 당황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배구를 할 때에도 잘하는 사람만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못하거나 안 해본 친구들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못해도 야유하지 않으며 무안하지 않게 하는 학교의 문화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자신감과 함께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공멘토링을 열심히 준비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앱 코딩 블록을 쌓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재미가 없을까봐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예상 외로 관심이 많았으며 정말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하고 앱 만드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간 친구도 있었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멘티들 중에 부끄러움이 많아 소심한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점심을 먹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왜 안 먹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고 아직도 모르지만 갑자기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점심을 같이 먹었다. 또한 씨앗콘서트 때 예정에도 없었던 노래를 용기내서 불렀다. 거기에 호응해주는 다른 친구들도 멋있었고 선생님들도 놀라서 정말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그 애의 마음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큰 도움이 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 일이 그 애의 머릿속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이 일을 계기로 더 행복한 기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안아줄 때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 굉장히 이상하지만 따뜻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마음 속에 있는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현재의 나에게 잘 될거라고 용기를 주고 미래의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꿈사다리학교 이후에도 나는 이 온기로 종종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학생을 생각하고 챙긴다는 것은 정말 온 마음을 다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 동안 마음 속에 이 온기가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서툴러도 괜찮아, 더 나아가겠습니다.”
꿈사다리학교 24기 포두중학교 멘토 박가람
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꿈꾸는 나는 늘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는 봉사 활동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고흥 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몇 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웃긴 일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교육 지원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를 찾기 힘들다니? 그러던 중, 학생회에서 함께하는 선배가 고흥을 포함, 교육 환경이 타지보다 떨어진 곳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는 걸 소개해 주었다. 이것이 나와 ‘꿈사다리학교’의 첫 만남이던 것이다. 사실 지원하기 전엔 처음 해보는 활동이란 두려움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하기 전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이것이 꿈사다리학교가 나에게 준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낯선 이와 함께,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공포에 우선 부딪혀보는 것, 처음이란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진 채 2022년의 마지막 나날을 포두중학교라는 작은 학교에서 힘써보자고 결심했다.
사람은 사람과 이어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을 살아간다. 어릴 적 친구와 바깥에서 뛰어놀던 기억, 부끄럽지만 함께 학교 옆 옥수수밭을 서리하던 기억까지도 미래엔 추억이 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타인과 끝없는 접촉인 셈이다. 허나 고흥은 이런 접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난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의 문제는 단지 추억을 못 쌓는단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이 다채로운 꿈을 꿀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집안일을 이어가겠다, 농사를 짓겠다, 양식업에 종사하겠다 등 아이들이 눈앞에 처한 상황에만 빗댄 꿈만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다양한 이들의 협력이 아주 중요했다. 계획을 위한 첫 회의에서 우리가 바란 것은 단 한 가지. 멘티와 멘토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함께 웃을 수 있는 활동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고, 이런 상태에서 완벽을 추구한다면 멘토와 멘티 모두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모토 아래에서 멘티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한 OT부터 학교는 즐거운 장소라는 인식을 남겨주기 위한 런닝맨,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씨앗 콘서트까지, 언제나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이들의 즐거운 추억이었다.
5일이란 시간 속에서 우린 점차 돈독해지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가르침은 멘토가 멘티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 멘티가 멘토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을 수 있는 긍정이다. 말라비틀어진 감자 마냥 지친 20대의 멘토들에게,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10대들의 끊임없는 웃음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우리의 실수에도 관대하게 웃어준다. 심지어는 괜찮다며 어른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멘토들은 아이들의 실수에 그들의 관점에서 응원해 준다.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 다시 도전할 자신감을 얻는다. 모두가 서투르지만, 모두가 웃음꽃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짧다.” 멘토들이 하나같이 동의한 말이다. 멘티들은 꿈과 사회를 연결해 줄 사다리 역할의 친구가 필요했고, 멘토들에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연말의 선물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함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결국은, 사람
꿈사다리학교 24기 보성지역아동센터 멘토 김나영
시작은 그저 학교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온 모집 공고를 본 것부터였다. 이번 방학에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과, 곧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나를 꿈사다리학교로 이끌었다. 미루고 미루다 쓴 자소서로 합격해 우쭐했던 것도 잠시, 뒤이어 진행된 면접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과연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긴장된 마음을 안고 참여한 워크숍에는 나와는 달리 열정과 기대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 저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하는 거구나.’ 싶은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이렇다 할 꿈이나 목표를 가지지 못한 나는 어딘지 모르게 내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참여했지만 내가 과연 이 봉사에 참여한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는지 불안함만 커졌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정말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일주일 동안 함께할 우리를 잘 소개해 보려고 마련한 멘토 소개 시간은 아이들이 뽑은 지루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준비한 것과 다르게 활동이 빨리 끝나버려서 남은 시간을 채우려고 한 초성 게임은 인기 폭발이었다. 그제야 내가 참여한 꿈사다리학교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건 과제도 시험도 아니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럴듯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고, 다시 하고 싶다고 말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보기 좋은 활동 목표와 자료화면이 아니라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커다란 목소리였다. 맑고 투명한 아이들의 반응은 흐릿했던 나의 시야를 깨끗이 씻어내려 주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서 절실히 느낀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활동을 계획할 때는 모두 열정적인 모습으로 회의를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모르기에 계속 회의가 더뎌졌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난 후에는 비교적 적은 시간임에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계획을 하는 지가 명확했기에 망설임이 줄어든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누구를 위해 하는 것 인지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처음 워크숍에 참여하고 느꼈던 뒤처진다는 조급함까지 해결해 주었다. 결국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제 그거 너무 재밌었어요!”라는 한마디에 밤을 새워도 행복했던 지난 일주일은 내가 앞으로 조급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해주었다.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꿈사다리학교 24기 보성지역아동센터 멘토 송민근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공부해서 임용고시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시험의 결과를 막론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아마도 지식 정도만 조금 늘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까먹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꿈사다리학교에서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40시간. 그 40시간 동안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잠시 뿐이고 점차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은 우리에게 여름에 다시 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이 40시간을 위해 반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40시간 동안 우리가 뭔가 대단한 지식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이 시간보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멘토들과 함께하는 시간, 일주일. 이 일주일 동안 나는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다. 공통된 목표는 서로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 놓였을 뿐, 생각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하나의 캔버스에 10명의 화가들이 모여 단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사람책, 1시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저자의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는 다른 멘토들이 나를 경험하고, 공감하게 했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모두가 독자인 동시에 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교육을 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얽매이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주어진 일주일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 단 한순간도 배움이 없던 순간은 없었다. 앞으로는 교사라는 직업의 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꿈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꿈을 꾸는 것 같다.
평생 식지 않을 온기
꿈사다리학교 24기 고흥 포두중학교 멘토 나세현
중학교 졸업을 한지 10년이 지나고 오랜만에 가본 학교의 강당은 놀랍도록 내 기억과 똑같았고,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은 깜짝 놀랄 만큼 내 예상과 달랐다. 생각보다 크다는 느낌과 동시에 내가 진짜 중학교에 왔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그 때부터 긴장이 되면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나의 멘티들이 남자 5명으로 정해졌을 때 부담이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중학교 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특히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학교 때 배구 수행평가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 해 본 배구는 손목이 아팠지만 좋은 점수를 맞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마침내 최고점수를 받게 됐지만 뿌듯함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만 들었었다. 그 때의 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체육을 즐기지 못했고 결국 체육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우연히 아이들과 함께 한 배구는 여전히 아팠고 여전히 못해서 하다가 도망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은 왜 이렇게 바뀌는 게 힘든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에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멘티들의 멘토였고 그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과 특성상 발표가 많이 없지만 이마저도 피할 정도로 발표를 싫어하던 내가 아이들 앞에 나서서 진행을 하게 됐다. 솔직히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괜찮았다. 내가 못하든 잘하든 그건 여기에서 별로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인정할 정도로 노래를 정말 못 부르지만 즉흥적으로 노래를 시켜도 당황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배구를 할 때에도 잘하는 사람만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못하거나 안 해본 친구들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못해도 야유하지 않으며 무안하지 않게 하는 학교의 문화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자신감과 함께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공멘토링을 열심히 준비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앱 코딩 블록을 쌓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재미가 없을까봐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예상 외로 관심이 많았으며 정말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하고 앱 만드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간 친구도 있었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멘티들 중에 부끄러움이 많아 소심한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점심을 먹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왜 안 먹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고 아직도 모르지만 갑자기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점심을 같이 먹었다. 또한 씨앗콘서트 때 예정에도 없었던 노래를 용기내서 불렀다. 거기에 호응해주는 다른 친구들도 멋있었고 선생님들도 놀라서 정말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그 애의 마음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큰 도움이 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 일이 그 애의 머릿속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이 일을 계기로 더 행복한 기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안아줄 때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 굉장히 이상하지만 따뜻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마음 속에 있는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현재의 나에게 잘 될거라고 용기를 주고 미래의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꿈사다리학교 이후에도 나는 이 온기로 종종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학생을 생각하고 챙긴다는 것은 정말 온 마음을 다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 동안 마음 속에 이 온기가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서툴러도 괜찮아, 더 나아가겠습니다.”
꿈사다리학교 24기 포두중학교 멘토 박가람
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꿈꾸는 나는 늘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는 봉사 활동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고흥 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몇 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웃긴 일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교육 지원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를 찾기 힘들다니? 그러던 중, 학생회에서 함께하는 선배가 고흥을 포함, 교육 환경이 타지보다 떨어진 곳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는 걸 소개해 주었다. 이것이 나와 ‘꿈사다리학교’의 첫 만남이던 것이다. 사실 지원하기 전엔 처음 해보는 활동이란 두려움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하기 전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이것이 꿈사다리학교가 나에게 준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낯선 이와 함께,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공포에 우선 부딪혀보는 것, 처음이란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진 채 2022년의 마지막 나날을 포두중학교라는 작은 학교에서 힘써보자고 결심했다.
사람은 사람과 이어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을 살아간다. 어릴 적 친구와 바깥에서 뛰어놀던 기억, 부끄럽지만 함께 학교 옆 옥수수밭을 서리하던 기억까지도 미래엔 추억이 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타인과 끝없는 접촉인 셈이다. 허나 고흥은 이런 접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난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의 문제는 단지 추억을 못 쌓는단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이 다채로운 꿈을 꿀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집안일을 이어가겠다, 농사를 짓겠다, 양식업에 종사하겠다 등 아이들이 눈앞에 처한 상황에만 빗댄 꿈만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다양한 이들의 협력이 아주 중요했다. 계획을 위한 첫 회의에서 우리가 바란 것은 단 한 가지. 멘티와 멘토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함께 웃을 수 있는 활동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고, 이런 상태에서 완벽을 추구한다면 멘토와 멘티 모두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모토 아래에서 멘티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한 OT부터 학교는 즐거운 장소라는 인식을 남겨주기 위한 런닝맨,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씨앗 콘서트까지, 언제나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이들의 즐거운 추억이었다.
5일이란 시간 속에서 우린 점차 돈독해지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가르침은 멘토가 멘티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 멘티가 멘토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을 수 있는 긍정이다. 말라비틀어진 감자 마냥 지친 20대의 멘토들에게,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10대들의 끊임없는 웃음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우리의 실수에도 관대하게 웃어준다. 심지어는 괜찮다며 어른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멘토들은 아이들의 실수에 그들의 관점에서 응원해 준다.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 다시 도전할 자신감을 얻는다. 모두가 서투르지만, 모두가 웃음꽃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짧다.” 멘토들이 하나같이 동의한 말이다. 멘티들은 꿈과 사회를 연결해 줄 사다리 역할의 친구가 필요했고, 멘토들에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연말의 선물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함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결국은, 사람
꿈사다리학교 24기 보성지역아동센터 멘토 김나영
시작은 그저 학교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온 모집 공고를 본 것부터였다. 이번 방학에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과, 곧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나를 꿈사다리학교로 이끌었다. 미루고 미루다 쓴 자소서로 합격해 우쭐했던 것도 잠시, 뒤이어 진행된 면접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과연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긴장된 마음을 안고 참여한 워크숍에는 나와는 달리 열정과 기대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 저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하는 거구나.’ 싶은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이렇다 할 꿈이나 목표를 가지지 못한 나는 어딘지 모르게 내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참여했지만 내가 과연 이 봉사에 참여한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는지 불안함만 커졌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정말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일주일 동안 함께할 우리를 잘 소개해 보려고 마련한 멘토 소개 시간은 아이들이 뽑은 지루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준비한 것과 다르게 활동이 빨리 끝나버려서 남은 시간을 채우려고 한 초성 게임은 인기 폭발이었다. 그제야 내가 참여한 꿈사다리학교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건 과제도 시험도 아니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럴듯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고, 다시 하고 싶다고 말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보기 좋은 활동 목표와 자료화면이 아니라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커다란 목소리였다. 맑고 투명한 아이들의 반응은 흐릿했던 나의 시야를 깨끗이 씻어내려 주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서 절실히 느낀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활동을 계획할 때는 모두 열정적인 모습으로 회의를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모르기에 계속 회의가 더뎌졌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난 후에는 비교적 적은 시간임에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계획을 하는 지가 명확했기에 망설임이 줄어든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누구를 위해 하는 것 인지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처음 워크숍에 참여하고 느꼈던 뒤처진다는 조급함까지 해결해 주었다. 결국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제 그거 너무 재밌었어요!”라는 한마디에 밤을 새워도 행복했던 지난 일주일은 내가 앞으로 조급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해주었다.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꿈사다리학교 24기 보성지역아동센터 멘토 송민근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공부해서 임용고시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시험의 결과를 막론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아마도 지식 정도만 조금 늘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까먹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꿈사다리학교에서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40시간. 그 40시간 동안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잠시 뿐이고 점차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은 우리에게 여름에 다시 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이 40시간을 위해 반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40시간 동안 우리가 뭔가 대단한 지식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이 시간보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멘토들과 함께하는 시간, 일주일. 이 일주일 동안 나는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다. 공통된 목표는 서로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 놓였을 뿐, 생각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하나의 캔버스에 10명의 화가들이 모여 단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사람책, 1시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저자의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는 다른 멘토들이 나를 경험하고, 공감하게 했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모두가 독자인 동시에 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교육을 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얽매이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주어진 일주일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 단 한순간도 배움이 없던 순간은 없었다. 앞으로는 교사라는 직업의 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꿈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꿈을 꾸는 것 같다.